2015년 2월 20일 금요일

Multiple-self ,Akrasia, embedded

개인주의적 관점을 가진 경제학 이론은 조직들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거나 심지어 무시함으로써 경제적 의사 결정의 현실을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개인주의적 이론이라면서도 개인에 대한 이해마저 그다지 깊지 않다는 사실이다.

분열된 개인: 사람은 '다중 자아'를 가지고 있다

개인주의 경제학자들은 개인이 원자처럼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사회 단위라고 강조한다. 물론 물리적인 의미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철학자, 심리학자는 물론이고 심지어 일부 경제학자까지도 개인이 더 이상 분열될 수 없는 존재인지에 관해 오래전부터 논쟁을 거듭해왔다.
꼭 정신분열증 환자가 아니더라도 한 사람이 자기 안에 서로 상반된 신호를 가지고 있는 일은 흔하다. 이 다중자아 문제는 널리 퍼져 있다. 용어는 익숙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 대부분이 경험해 본 것이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라도 상황이 달라지면 완전히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집안일을 아내와 나눠서 하는 문제에는 매우 이기적인 남자가 전쟁에 나가서는 전우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희생한다. 이런 현상은 한 사람이 다수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이 남자는 남편과 군인이라는 복수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사람들은 맡은 역할에 따라 기대되는 바도 다르고 행동도 달라지낟.
때로는 의지가 약해서 그럴 수도 있다. 우리는 종종 뭔가를 나중에 하겠다고 결심하지만 정작 그 시간이 되면 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특히 이 문제를 많이 고민했고, 심지어 이 현상을 일컫는 아크라시아(akrasia) 라는 용어까지도 만들었다. 예를 들어 건강하게 생활하겠다고 결심해 놓고는 맛있는 디저트 앞에서 의지가 무너질 때가 많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에 대비해 우리는 '또 다른 나 자신'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방도를 마련해 놓기도 한다. 오디세우스가 사이렌에 홀리지 않도록 배의 돛대에 자기를 묶어 달라고 요청한 것처럼 말이다. 레스토랑에 식사하기 전, 다이어트 중이니 디저트를 먹지 않겠다고 좌중에게 미리 선언해 나중에 체면상 어쩔 수 없이 디저트를 주문하지 않도록 해 본 경험이 독자 여러분에게도 있을 것이다.(집에 가서 초콜릿 쿠키로 보상하면 되니까)

사회에 뿌리박은 개인: 개인은 사회에 의해 형성된다.
다중 자아 문제는 자신이 원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더 쪼개 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이 다른 개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도 개인은 원자가 아니다
개인주의 전통을 따르는 경제학자들은 개인의 선호가 어디에서 생겨나는지를 묻지 않고, '독립 의지를 가진' 개인의 내부에서 생겨난 궁극적인 자료로 취급할 뿐이다. 이 개념은 "취향은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De gustibus non est disputandum)." 라는 라틴어 격언에 잘 요약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선호는 가족, 이웃, 교육, 사회적 계급 등등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 환경에 크게 영향받아 만들어진다. 성장 배경과 생활 환경이 다르면 소비하는 것이 다를 뿐 아니라 ' 원하는' 것도 다르다. 이런 사회화 socialization 과정이 있기 때문에 개인을 서로에게 분리할 수 있는 원자로 취급할 수 없는 것이다. (멋진 용어를 쓰자면) 개인은 사회에 뿌리박고 (embedded) 있다. 개인이 사회의 산물이라면 " 사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으로서의 남자, 여자, 그리고 가족이 있을 뿐이다." 라고 말한 마거릿 대처 총리는 심각한 오류를 범한것이다. 사회 없이 개인은 있을 수 없다.
1980년대에 방영된 BBC 방송국의 컬트 SF 코미디 <레드 드워프>에서 주인공 데이브 리스터가 죄책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와인바에 한번 갔었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빈둥거리기 좋아하는 성격이 리버풀 노동자 계급 출신인 리스터는 자기가 한 짓이 무슨 범죄 행위나 된 것처럼 행동했다. (물론 그의 친구들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계급의 배반자"라고 비난했을 것이다.) 영국의 빈곤층 출신 청소년 가운데 일부는 수십년 동안 정부가 대학 진학을 독려하는 정책을 추진했음에도 '유니(uni)'는 자기와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또 대부분의 사회에서 여성은 과학, 공학, 법학, 경제학 같은 '딱딱한'분야는 자기와 안 맞다고 생각하도록 사회화되어 왔다.
문학광 영화에도 이 문제는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 [피그말리온]을 바탕으로 영화화된 <마이 페어 레이디>, 윌리 러셀의 연극과 영화<리타 길들이기> ,마르셀 파뇰의 책과 영화<마르셸의 여름> 등은 모두 교육, 그리고  그 결과 경험하게 되는 다른 라이프 스타일로 인해 주인공이 출신 계급과 다르게 변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달라진 주인공은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예전에 원했던 것과는 다른 것을 원하게 된다.
물론 사람은 자유 의지를 가졌고, 자기와 환경이 같은 사람이 원하고 선택할 만한 것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고, 그렇게 하기도 한다. <리타 길들이기>에서 리타가 대학 학위를 따기로 선택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환경은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며, 무엇을 할지 선택하는 데 강한 영향을 끼친다. 개인은 그가 속한 사회의 산물이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장하준/김희정 옮김/2014/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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