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23일 월요일

성폭행과 공범들

여자 선수들에게 감독은 그냥 감독이 아니다. 군주다. 신이다. 감독의 말을 거역하면 게임 못 뛴다. 더 무서운 건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거나 잘리는 거다. 특히 박명수 전 감독처럼 국가 대표 팀 감독도 했고 한 팀에서 19년 있으면서 선수 선발권 등 통상적 감독의 권한 외에 선수 연봉 책정 등 행정권과 재정권까지 거머쥔 감독에게 저항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무모한 짓이다.
 세상을 알기도 전에 농구를 시작했던 이들에게 농구 너머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농구 선수 외엔 친구도 없고 편의점 '알바' 한 번 해본 적 없으며 심지어 식구마저 군인 휴가 나와 만나듯 했기에 이들에게 농구를 그만둔다는 것은 곧 자존의 '사망'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러한 사건이 여성 스포츠계에 비일비재함에도 선수들은 울기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왜 선수도, 그 부모들도 가만히 있냐는 질문에 한 체육계 인사는 이렇게 답한다. "일을 당하고 나면 선수도, 부모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거예요. '큰일 났다' '이걸 어쩌냐', 고민도 하고 화도 내긴 하지만 정작 뭘 어째야 하는지 모르는 거죠. 그리고 이게 어디 소문내고 다닐 일도 아니잖아요." 바로 이거다. 감독은 이 문제가 '말 못할 고민'이라는 점을 집중 공략하면서 합의를 유도한다. 그리고는 한마디를 덧붙인다."그래도 아이 운동은 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이렇게 어린 피해자의 미래를 인질 삼아 협박성 발언을 양념처럼 살짝 섞어 넣으면 상황은 종료(?)된다. 부모들도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중략

필자가 주목하는 또 다른 공범은 바로 기자들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상당수 기자들은 이러한 스포츠계의 성폭력 문제를 알고 있다.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를 기사화하지 않는다. 무시무시한 침묵의 카르텔이다. 몇 년 전 농구 아닌 종목의 한 여자 팀 감독의 문제가 터졌으나 이는 기사화 되지 않았다. 이름 꽤나 알려진 이 감독이 선수 가족과는 합의하고 기자들은 '입막음'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기자들은 감독 및 구단과의 '공생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즉 이해관계에 따라 기사화 여부를 판단한다. 좋은 기사거리를 계속 얻기 위해서는 '좋은 관계'가 필수적일 수 밖에 없다.


어퍼컷/정희준지음/2009/미지북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