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7일 토요일

김훈과 거대담론

김훈: 인간은 불평등한 것이 맞잖아.
최보은: 그럼 왜 주장하지 않으세요?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가진 분이 왜 주장을 안 하세요.
김훈: 난 평등사회를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저널리스틱한 글로서 그런 주장을 할 생각이 추호도 없어. 그런 자기모순 속에서 사는 게 내 삶이라고 생각해.
최보은: 언론인으로서 기본적인 철학은 반드시 필요한 거 아닌가요?
김훈: 나는 상식적인 거야. 약한 놈의 걸 뜯어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이데올로기가 아니고 상식이지. 언론인은 거대담론을 하면 안 돼. 나는 그런 새끼들 가장 경멸하고 증오한다고. 한겨레에도 거대담론하는 놈들 많을 거야. 거의 대부분 일거야.
거대담론은 다 오류야
최보은: 거의 대부분은 아니에요.
김훈: 한겨레 기자들은 거대담론을 하지 말아라. 제발.
최보은: 일상에서 출발하라는 얘기죠?
김훈: 거대담론, 가치판단, 선악, 정오… 이런 거 매일매일 판단하잖아. 이것도 시건방진 수작이고. 일단 ‘존재’를 판단해야 해. 이것이 옳느냐 아니냐를 판단하기 전에 “이것은 무엇이냐”에 대한 판단을 먼저 해야 한다고. What is this! 존재판단이 확실하지 않을 때는 가치판단을 유보해야 하고… 무엇보다 거대담론을 하지 말아야 해.
최보은: “거대담론을 하면 안 돼”라는 논리에는 모순이 있다고 생각해요. 거대담론을 하는 사람도 있는 거예요. 거대담론이란 건 커다란 철학 아니겠어요?
김훈: 그건 다 오류야. “이 시대는 총체적으로 가고 있는가” 따위의 소리들… 이런 걸 쓰지 말라고.
김규항: 80년대 이후 우리 사회 거대담론의 천박성에 대해선 어느 정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런 인정과 세상의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보는 거대담론 자체에 대한 회의는 전혀 다른 겁니다. 가령 저는 제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봅니다. 개인적으로 볼 때는 천상 사회주의자예요. 이타적이고, 욕심도 없고, 경쟁도 싫어하고…. 근데 사회 문제에 대해선 이상하게도 보수적이죠. 저는 그런 괴리가 시스템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생긴다고 봅니다. 그런 사람이 그런 능력을 가질 때 가장 이상적인 상태가 될 겁니다. 인간의 내면을 얘기하는 일과 거대담론을 말하는 건 둘 다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현재 실재하는 거대담론의 가치를 따지는 일이죠.
최보은: 그러니까 거대담론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게 아니라, 그 차이를 인정하고….
김규항: 저는 선생님의 말씀 속에서 현상으로 본질을 규정하는 일관된 이중성을 발견합니다. 선생님은 세상은 원래 그런 거고 변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 세계관에 대해 저는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일단 하나의 입장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나아지는 노력에 별로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개인의 취향이나 세계관과, 그런 노력이 전혀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건 다른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김훈: 그렇죠.
김규항: 선생님이 거대담론을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치를 떠는 건 선생님의 문제지만, 중세가 근대사회가 되듯 사회 시스템이 변하는 건 역시 그런 식의 생각과 노력에 의해서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변화된 세상은 분명 이전보다 낫고 선생님 역시 그 혜택 속에 사는 건데 말입니다.
김훈: 하여간 난 안 할거야. 동참하고 싶지 않아.
김규항: 몇 시간의 대화로 그런 세계관의 합의를 이루거나 기대할 수는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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