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2일 월요일

선악관

1. 절대가 아니라 상대다.
절대 선도 없고 절대 악도 없다. 그 평가 기준도 시대 상황에 따라 바뀐다. 19세기 미국에서 노예제도를 옹호한 남부를 악으로 노예제도를 반대한 북부를 선으로 단순하게 갈라 말할 수 있을까?북부가 노예제도를 반대한 이유는 자본주의 생산 관계의 성숙 때문이었다고 한다. 경제적 필요성이 서로 달랐을 뿐이다. 요즘 어른들이 많이 사용하는 진보와 보수 라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진보와 보수는 절대적 개념이 아니다. 아무리 진보적인 사람이더라도 보수적인 기질이나 측면이 있고 아무리 보수적인 사람이더라도 진보적인 측면이 있다.

2. 누구 입장에서 볼 것이냐
세상을 보는 자리가 중요하다. 어디서 보느냐 누구의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림이 다르다. 부자의 입장에서 볼 때와 가난뱅이의 입장에서 볼 때는 하늘땅 차이다. 권력자의 입장이냐 힘없는 서민의 입장이냐에 따라서도 그렇다. 누구의 시선으로 보느냐는 결국 철학의 문제다. 다른 말로는 세계관이라고도 한다. 세계를 어떻게 볼것이냐!
대부분 자기가 선 자리에서 세상을 보려고 한다. 상식적으로 그게 맞는 듯 보인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 처지에서 ,특히 자신보다 못한 사람 처지에서 세상을 보고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려운 말로 "존재가 의식을 배반한다"고 하는데 이런 걸 정의라고도 부른다. 아 "정의란 무엇인가" 에관한 해답이 나왔나?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올수록 세상은 건강해진다 

이제 결론이다 이분법적인 선악관에서 벗어난다는 건 한마디로 합리다. 근대란 그러한 합리적 이성의 시대다. 휘어지지 않은 선악관은 합리적인 글의 첫 단추다. 


글쓰기 홈스콜/고경태/2011/한겨레출판사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