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7일 화요일

칸트 미학이 지향했던 순수성을 공격하다- 부르디외

◇ 대중 미학의 논리를 재구성하려고 시도하자마자 이것이 칸트 미학의 부정적 반대항처럼 보이고, 대중의 에토스는 암묵적으로 「미의 분석학」의 각 명제에 대해 그것을 부인하는 반-명제를 맞세우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미적 판단의 독자성을 구성하는 것을 파악하기 위해 칸트는 교묘하게 ‘쾌적한 것 또는 맘에 드는 것’과 ‘즐거움을 주는 것’을 구분하며, 더 일반적으로는 명상의 진정 미학적인 특징을 보장해주는 유일한 특징인 ‘무관심disinterestedness’과 ‘쾌적한 것’을 규정하는 ‘감각의 관심the interest of the senses’, 그리고 ‘선’을 규정하는 ‘이성의 관심the interest of Reason’을 확실하게 분리시키려고 노력했다. 이와 반대로 단순히 기호의 기능에 그치더라도 모든 이미지가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기를 기대하는 민중계급은 흔히 아주 분명하게 모든 판단을 내리려고 한다. 따라서 죽은 병사를 찍은 사진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재현 대상의 현실 또는 그런 재현이 수행할 수 있는 기능, 즉 전쟁에 대한 공포심을 갖도록 하거나 아니면 단순히 그런 공포심을 보여줌으로서 사진가가 보여주려고 하는 전쟁에 대한 공포감을 거부하는 반응을 통해 일정한 판단을 불러일으킨다. (…) 의미도 흥미도 없는 무의미한 이미지 또는 애매한 이미지를 거부한다는 것은 곧 그것을 목적 없는 최종목적, 스스로를 의미하는 이미지 따라서 자신 이외의 지시 대상은 갖고 있지 않는 이미지로 간주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