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3일 화요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곳에서는 스쳐 지나가야만 한다.

그리하여 많은 군중과 여러 도시를 천천히 지나가면서 차라투스트라는 에움길로 그의 산과 그의 동굴을 향해 돌아갔다. 그런데 보라, 그가 자기도 모르는 새에 대도시의 성문 앞에 이르렀을 때, 입에 거품을 문 바보가 두 손을 활짝 벌린 채 그를 향해 뛰어오며 길을 가로막았다.이자는 사람들이 차라투스트라의 원숭이라고 불렀던 바보였다. 왜냐하면 이 바보가 차라투스트라의 문장과 억양을 조금 익혔고 또한 즐겨 그의 지혜를 빌려 썼기 때문이었다. 그 바보가 차라투스트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 차라투스트라여, 여기는 대도시입니다. 여기서 당신은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오히려 모든 것을 잃을 뿐입니다.
어찌하여 당신은 이 진흙탕을 걸어서 건너려 하십니까? 당신의 발도 생각하셔야죠! 차라리 이 문에 침을 뱉고 발길을 돌리십시오!
여기는 모든 위대한 감정이 썩어버립니다. 여기서는 매마르게 덜거덕거리는 왜소한 감정만이 덜거덕거릴 수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이미 정신의 도살장과 음식점 냄새를 맡지 못합니까? 이 도시는 도살된 정신이 내뿜는 증기로 자욱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영혼들이 더러운 누더기처럼 축 늘어져 매달려 있는 것을 보지 못합니까? 게다가 사람들은 이 누더기로 신문도 만들지요!
당신은 여기서 정신이 말장난이 되었다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까? 정신은 역겨운 말의 구정물을 토해 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말의 구정물로 신문을 만듭니다.
그들은 서로 몰아대지만 어디로 가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서로 열을 올리지만 왜 그런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양철판을 두들기고 자기들의 금화를 절겅거립니다.
그들은 추위에 떨며 화주(火酒)로 몸을 녹이려 합니다. 몸이 달아오른 그들은 얼어붙은 정신에서 냉기를 얻고자 합니다. 그들 모두는 병약한 자들이며 여론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온갖 욕정과 악덕이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에는 도덕군자들도, 잽싸게 한 자리를 차지한 덕망 높은 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 영악한 자들은 손가락을 놀려 글을 써댑니다. 그들의 엉덩이는 앉아 기다리느라 굳은살이 박였지요. 복도 많게 가슴에 별 모양의 장식을 단 그들은 또한 하늘로부터 속을 넣어 빈약한 엉덩이를 부풀린 딸애들을 선사받기도 했습니다.
하늘로부터 별과 자애로운 침이 뚝뚝 떨어집니다. 별로 치장하지 못한 가슴들은 모두 저 하늘을 동경합니다. (....중략)



그러나 여기서 차라투스트라는 거품을 물고 열변을 토하는 바보의 말을 제지하면서 그의 입을 막았다
"제발 그만 하게!" 라고 차라투스트라가 소리를 질렀다. "그대의 이야기와 어투에 구역질을 느낀 지 이미 오래네!
그대는 무슨 까닭으로 개구리와 두꺼비가 되어야만 할만큼 오랫동안 늪가에 살았더란 말인가?
이제 그대의 핏줄 속으로 썩고 부글거리는 늪의 피가 흐르고 있고, 그 때문에 꿱꿱거리며 욕설을 퍼붓고 있지 않은가?
그대는 왜 숲으로 가지 않았는가? 아니면 왜 대지를 갈지 않았는가? 바다는 푸른 섬들로 가득하지 않은가?
나는 그대의 경멸을 경멸한다. 그리고 그대는 내게 경고하면서 그대 자신에게는 왜 경고하지 않는가?
나의 경멸과 나의 경고하는 새는 오직 사랑으로부터만 날아오를 뿐, 늪으로부터 날아올라서는 안 된다!
입에 거품을 문 바보여, 사람들은 그대를 나의 원숭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는 그대를 나의 투덜대는 돼지 라고 부르리라. 투덜댐으로써 그대는 바보스러움에 대한 나의 예찬을 욕되게 한다.
애초에 그대를 투덜대게 만드는 것은 누구였던가?아무도 그대에게 충분히 알랑거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그대는 그처럼 요란하게 투덜댈 구실을 마련키 위해 이 쓰레기 더미 위에 앉았던 것이다.
마음껏 복수할 구실을 마련하기 위해서! 그대 허영심에 찬 바보여. 그대가 내뿜고 있는 그 모든 거품은 말하자면 복수심이다. 나는 그대를 꿰뚫어 보고 있다!
그러나 그대의 바보 같은 말은 그것이 지당할 때조차도 내게 상처를 준다! 심지어 차라투스트라의 말이 백번 옳은 경우라 하더라도, 그대는 나의 가르침을 이용하여 언제나 부정을 저지를 것이다!"
(...중략)
슬프도다 이 거대한 도시여! 나는 오래전부터 이 거대한 도시를 태워버릴 불기둥을 보았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한 불기둥들이 위대한 대낮보다 먼저 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에도 때가 있고 그것의 정해진 운명이 있는 법!
그대 바보여 작별의 말로 나는 그대에게 다음의 가르침을 전한다.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곳에서는 스쳐 지나가야만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고 바보와 그 대도시를 스쳐지나갔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장희창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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