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7일 일요일

노동윤리가 최하층계급을 낳다

'최하층계급'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건 군나르 뮈르달 Gunnar Myrdal이었다. 1963년에, 그는 나날이 수많은 이들을 영구히 실직자로 만드는 탈산업화의 위험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 말을 사용했다. 실직의 이유는 실업자가 된 이들의 무능력이나 도덕적 결함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일자리가 필요하고 일자리를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돌아갈 일자리 부족 탓이었다. 노동윤리의 설교가 실패한 결과가 아니라, 사회가 노동윤리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삶을 뒷받침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뮈르달의 견해로는. 최하층계급의 구성원들은 배제의 희생양이었다. 그들이 새로 얻은 지위는 스스로 택한 결과가 아니었다. 배제는 경제 논리의 산물이고, 배제가 정해진 이들에겐 어떤 힘도 영향력도 없기 때문이다.
최하층계급이라는 개념이 대중의 관심 속으로 들어간 건 훨씬 나중인, 1977년 8월 29일, [타임]지의 커버스토리를 통해서였다. 커버스토리는 '거의 모든 이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통제하기 어렵고, 사회적으로 이질적이며 해로운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 그들은 가까이 할 수 없는 이들, 미국의 최하층계급이다'라고 매우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이 정의의 뒤로 긴 목록이 이어졌다. 비행청소년, 학교 중퇴자, 약물중독자, 복지 수급자인 편모, 도둑, 방화범, 폭력범, 미혼모, 기둥서방, 마약밀매상, 거지. 이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두려워하는 대상들로서 , 평범한 이들의 양심에 큰 부담을 지운다.
'통제하기 어렵고', 이질적이고,해로운, 따라서 가까이 할 수 없는 이들,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봤자 소용이 없다. 그 손은 그저 허공에 머물 테니. 이들은 구제할 길이 없었다. 그들을 구제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병든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가까이할 수 없다는 건 노동윤리가 이를 수 없다는 걸 뜻했다. 훈계, 감언, 양심을 건드리는 호소도,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모든 것에서부터 자발적으로 소외된 이들의 벽을 뚫지 못했다. 이것은 단순히 노동을 거부하는 문제이거나 무위도식하고 기생하는 삶을 더 좋아하는 문제가 아니라, 노동윤리가 상징하는 모든 것에 대한 공공연한 적대의 문제였다.
켄 올레타Ken Auletta는 1981~2에 꾸준히 '최하층계급'의 세계를 탐구하여 [뉴요커]에 보도했고, 그 뒤에는 책으로 펴내어 널리 읽히고 큰 영향을 미쳤다. 그를 자극한 건, 그 자신의 양심과 그의 동료 시민들 대부분이 느끼는 근심이었다.

나는 궁금했다. 대부분의 미국 도시를 괴롭히고 있는 범죄, 생활보호, 마약통계의 급증, 그리고 반사회적 행동의 너무도 명백한 증가 뒤에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나는 매우 뚜렷한 최하층 계급이 존재한다는 데에 가난한 학생들이 거의 이견을 보이지 않음을 알았다. 그리고 이 최하층계급이 일반적으로 사회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고, 평범하게 받아들여지는 가치들을 거부하며, 소득 문제뿐 아니라 행동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도, 그들은 가난하기만 한게 아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그들의 행동은 비정상으로 보인다.

최하층계급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유지시키는 담론이 쓰는 어휘, 문장, 수사법에 눈을 돌려 보자. 올레타의 문맥은 아마 그것을 살펴볼 가장 좋은 자료이리라. 그의 계승자들은 대부분 그보다 덜 양심적이었지만, 올레타는 그들과 달리 그저 '최하층계급을 비난'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는 조금 거리를 두고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이야기에 등장하는 부정적 주인공들을 비난 하는 만큼 동정한다.

새로운 빈곤/지그문트 바우만/이수영 옮김/ 2004/ 천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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