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26일 목요일

근대의 가치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사람들

근대의 가치 기준이란 이성과 과학의 발전과 뗄 수 없는 관계인 자본주의와 밀접한데, 상품 가치, 생산성 제일주의, 시장 원리로 요약할 수 있다. 따라서 근대의 가치를 물려받은 오늘날까지 노인, 장애인, 저학력자나 학교 부적응자 등과 같이 생산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집단들은 우선적인 소외의 대상이 된다. 이들은 자본주의적 생산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거나 (노인이나 장애인), 그것에 필요한 교육을 마치지 못했다는 의미에서(저학력자), 또는 적어도 사회가 요구하는 훈련 과정을 견뎌내지 못했다는 이유(학교 부적응자)에서 동등한 선원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이 되는 기존 질서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판단된 일탈 집단들도 배제의 대상이다. 예를 들어 범죄자나 마약 중독자처럼 비교적 일반적인 동의가 가능한 집단들뿐만 아니라, 이혼녀나 동성애자도 현존하는 가치 규범에 어긋난다는 의미에서 소외의 대상이 되며 심지어 뚱뚱하거나 못생긴 사람들조차 자본주의가 지향하는 상품 가치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배제와 차별의 대상이 된다.
다른 인종이나 다른 민족에 대한 차별과 배척과 근대의 산물이다. 근대의 출발은 자본주의의 탄생과 함께 진행되었고 자본주의적 생산은 국가를 단위로 발전해왔으며 이것은 필연적으로 민족주의적 단결을 불러일으켰다. (...)민족이 탄생하자마자 이민족이 탄생한 샘이다. 이민족은 국경 너머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국경 바깥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자국 영토 안에 산다면 그들은 '우리'와 달라서 민족에 포함될 수 없는 존재, 즉 열등한 존재로 영락없이 소수자가 되었다. 이처럼 근대가 탄생시킨 국가는 민족주의를 낳았고, 민족주의는 그저 '조금 다른'사람들인 이인종과 이민족을 차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인권과 소수자 이야기/박경태 지음/ 이영규 그림/ 2007/책세상

인종주의

철학자 토도로프(Tzvetan Todorov)의 설명

첫째 인간은 공통의 신체적 특질을 가진 서로 다른 인간 집단인 인종으로 나뉘는데, 그들의 차이는 동물의 다른 종들 사이의 차이와 같다. 둘째, 신체적-정신적 특질들은 상호 의존하며 그 특징들은 지속된다. 신체적 특질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자질은 유전으로 전달되며 교육으로 바꿀 수 없다. 셋째, 집단은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개인의 행위는 대체로 그가 속한 인종적-문화적 집단에 의존한다. 넷째, 인종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서로 간에 우열이 있다. 이는 신체적 아름다움이나 지적-도덕적 우열로 나타난다. 다섯째, 이상의 지식에 근거해 도덕적 판단이나 정치적 이상이 나타나고, 이에 따라 열등한 인종에 대한 예속화와 절멸이 정당화 된다.


인권과 소수자 이야기/박경태 지음/ 이영규 그림/ 2007/책세상


2015년 2월 23일 월요일

알리의 징병거부

"난 베트콩하고 싸울 일 없어요. 베트남 사람들은 나를 깜둥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해를 끼치지도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총을 들이댈 이유가 없다.


-징병거부가 불량한 것으로 여겨질 뿐만 아니라 죄악시되던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알리의 징병 거부는 반전 운동의 불씨가 된다. 그는 영화, 음악, 스포츠 등 분야를 망라해 징병 반대와 반전의 기치를 내걸었던 최초의 인물이었고, 결국 반전의 상징적 존재가 된다. 그러나 그 대가는 엄청났다. 챔피언 벨트는 물론 선수 자격까지 박탈당하고 무려 3년 6개월간 링에 오르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타협하지 않았다. 징병 거부로 5년형을 선고받았지만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 투쟁 끝에 결국 무죄 판결을 받는다.

어퍼컷/정희준지음/2009/미지북스

성폭행과 공범들

여자 선수들에게 감독은 그냥 감독이 아니다. 군주다. 신이다. 감독의 말을 거역하면 게임 못 뛴다. 더 무서운 건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거나 잘리는 거다. 특히 박명수 전 감독처럼 국가 대표 팀 감독도 했고 한 팀에서 19년 있으면서 선수 선발권 등 통상적 감독의 권한 외에 선수 연봉 책정 등 행정권과 재정권까지 거머쥔 감독에게 저항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무모한 짓이다.
 세상을 알기도 전에 농구를 시작했던 이들에게 농구 너머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농구 선수 외엔 친구도 없고 편의점 '알바' 한 번 해본 적 없으며 심지어 식구마저 군인 휴가 나와 만나듯 했기에 이들에게 농구를 그만둔다는 것은 곧 자존의 '사망'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러한 사건이 여성 스포츠계에 비일비재함에도 선수들은 울기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왜 선수도, 그 부모들도 가만히 있냐는 질문에 한 체육계 인사는 이렇게 답한다. "일을 당하고 나면 선수도, 부모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거예요. '큰일 났다' '이걸 어쩌냐', 고민도 하고 화도 내긴 하지만 정작 뭘 어째야 하는지 모르는 거죠. 그리고 이게 어디 소문내고 다닐 일도 아니잖아요." 바로 이거다. 감독은 이 문제가 '말 못할 고민'이라는 점을 집중 공략하면서 합의를 유도한다. 그리고는 한마디를 덧붙인다."그래도 아이 운동은 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이렇게 어린 피해자의 미래를 인질 삼아 협박성 발언을 양념처럼 살짝 섞어 넣으면 상황은 종료(?)된다. 부모들도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중략

필자가 주목하는 또 다른 공범은 바로 기자들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상당수 기자들은 이러한 스포츠계의 성폭력 문제를 알고 있다.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를 기사화하지 않는다. 무시무시한 침묵의 카르텔이다. 몇 년 전 농구 아닌 종목의 한 여자 팀 감독의 문제가 터졌으나 이는 기사화 되지 않았다. 이름 꽤나 알려진 이 감독이 선수 가족과는 합의하고 기자들은 '입막음'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기자들은 감독 및 구단과의 '공생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즉 이해관계에 따라 기사화 여부를 판단한다. 좋은 기사거리를 계속 얻기 위해서는 '좋은 관계'가 필수적일 수 밖에 없다.


어퍼컷/정희준지음/2009/미지북스

아서 애시 (Arthur Ashe)

왜 신은 그토록 나쁜 질병을 당신에게 줘야만 했을까?

나는 내가 우승컵을 들었을 때 '왜 나지Why me'라고 절대 묻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내가 오늘 고통을 당한다 해서 '왜 나야'라고 물어선 안 될 것이다. .. 나의 고통에 대해 '왜 나야'라고 묻는다면 내가 받은 은총에 대해서도 '왜 나야'라고 물어야 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기뻣던 순간은 윔블던을 우승했을 때도, US 오픈을 우승했을 때도 아니다.UCLA를 졸업하는 날 할머니에게 졸업 가운을 입혀드렸던 순간이다.
( A HARD ROAD TO GLORY)


운동은 건강과 취미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직업으로는 생각하지 마라.
미국 고교 농구선수가 NBA 선수가 될 확률은 0.0001%이하
변호사나 의사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의 오랜 관심은 인권이었다. 그는 UN본회의에서 인권을 주제로 연설했을 뿐 아니라 남아프리카의 인종 차별 철폐를 위한 항의 시위에도 나섰고, 죽기 얼마 전엔 아이티 난민에 대한 미국의 잔인한 정책에 항의하다가 체포된 경력도 있다. 죽기 전, 그는 에이즈보다 '흑인됨'이 더 고통스러운 것이라면서 "에이즈는 나의 몸을 죽이지만 인종차별은 정신soul을 죽인다고 토로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가 그의 첫 미국 방문 때 가장 먼저 만나길 희망했던 인물도 바로 아서 애시였다.

어퍼컷/정희준 지음/2009/미지북스

http://www.brainyquote.com/quotes/authors/a/arthur_ashe.html

2015년 2월 20일 금요일

스트레이트(straight)와 피처(feature)

스트레이트는 사실 기사이고 피처는 이야기 기사이다.
스트레이트는 객관적으로 있었던 사실을 자초지종과 함께 알려주는 기사다.
이에 비해 피처는 어떤 사실과 사건의 이면에 숨은 스토리를 전해준다.

Multiple-self ,Akrasia, embedded

개인주의적 관점을 가진 경제학 이론은 조직들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거나 심지어 무시함으로써 경제적 의사 결정의 현실을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개인주의적 이론이라면서도 개인에 대한 이해마저 그다지 깊지 않다는 사실이다.

분열된 개인: 사람은 '다중 자아'를 가지고 있다

개인주의 경제학자들은 개인이 원자처럼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사회 단위라고 강조한다. 물론 물리적인 의미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철학자, 심리학자는 물론이고 심지어 일부 경제학자까지도 개인이 더 이상 분열될 수 없는 존재인지에 관해 오래전부터 논쟁을 거듭해왔다.
꼭 정신분열증 환자가 아니더라도 한 사람이 자기 안에 서로 상반된 신호를 가지고 있는 일은 흔하다. 이 다중자아 문제는 널리 퍼져 있다. 용어는 익숙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 대부분이 경험해 본 것이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라도 상황이 달라지면 완전히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집안일을 아내와 나눠서 하는 문제에는 매우 이기적인 남자가 전쟁에 나가서는 전우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희생한다. 이런 현상은 한 사람이 다수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이 남자는 남편과 군인이라는 복수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사람들은 맡은 역할에 따라 기대되는 바도 다르고 행동도 달라지낟.
때로는 의지가 약해서 그럴 수도 있다. 우리는 종종 뭔가를 나중에 하겠다고 결심하지만 정작 그 시간이 되면 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특히 이 문제를 많이 고민했고, 심지어 이 현상을 일컫는 아크라시아(akrasia) 라는 용어까지도 만들었다. 예를 들어 건강하게 생활하겠다고 결심해 놓고는 맛있는 디저트 앞에서 의지가 무너질 때가 많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에 대비해 우리는 '또 다른 나 자신'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방도를 마련해 놓기도 한다. 오디세우스가 사이렌에 홀리지 않도록 배의 돛대에 자기를 묶어 달라고 요청한 것처럼 말이다. 레스토랑에 식사하기 전, 다이어트 중이니 디저트를 먹지 않겠다고 좌중에게 미리 선언해 나중에 체면상 어쩔 수 없이 디저트를 주문하지 않도록 해 본 경험이 독자 여러분에게도 있을 것이다.(집에 가서 초콜릿 쿠키로 보상하면 되니까)

사회에 뿌리박은 개인: 개인은 사회에 의해 형성된다.
다중 자아 문제는 자신이 원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더 쪼개 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이 다른 개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도 개인은 원자가 아니다
개인주의 전통을 따르는 경제학자들은 개인의 선호가 어디에서 생겨나는지를 묻지 않고, '독립 의지를 가진' 개인의 내부에서 생겨난 궁극적인 자료로 취급할 뿐이다. 이 개념은 "취향은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De gustibus non est disputandum)." 라는 라틴어 격언에 잘 요약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선호는 가족, 이웃, 교육, 사회적 계급 등등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 환경에 크게 영향받아 만들어진다. 성장 배경과 생활 환경이 다르면 소비하는 것이 다를 뿐 아니라 ' 원하는' 것도 다르다. 이런 사회화 socialization 과정이 있기 때문에 개인을 서로에게 분리할 수 있는 원자로 취급할 수 없는 것이다. (멋진 용어를 쓰자면) 개인은 사회에 뿌리박고 (embedded) 있다. 개인이 사회의 산물이라면 " 사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으로서의 남자, 여자, 그리고 가족이 있을 뿐이다." 라고 말한 마거릿 대처 총리는 심각한 오류를 범한것이다. 사회 없이 개인은 있을 수 없다.
1980년대에 방영된 BBC 방송국의 컬트 SF 코미디 <레드 드워프>에서 주인공 데이브 리스터가 죄책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와인바에 한번 갔었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빈둥거리기 좋아하는 성격이 리버풀 노동자 계급 출신인 리스터는 자기가 한 짓이 무슨 범죄 행위나 된 것처럼 행동했다. (물론 그의 친구들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계급의 배반자"라고 비난했을 것이다.) 영국의 빈곤층 출신 청소년 가운데 일부는 수십년 동안 정부가 대학 진학을 독려하는 정책을 추진했음에도 '유니(uni)'는 자기와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또 대부분의 사회에서 여성은 과학, 공학, 법학, 경제학 같은 '딱딱한'분야는 자기와 안 맞다고 생각하도록 사회화되어 왔다.
문학광 영화에도 이 문제는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 [피그말리온]을 바탕으로 영화화된 <마이 페어 레이디>, 윌리 러셀의 연극과 영화<리타 길들이기> ,마르셀 파뇰의 책과 영화<마르셸의 여름> 등은 모두 교육, 그리고  그 결과 경험하게 되는 다른 라이프 스타일로 인해 주인공이 출신 계급과 다르게 변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달라진 주인공은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예전에 원했던 것과는 다른 것을 원하게 된다.
물론 사람은 자유 의지를 가졌고, 자기와 환경이 같은 사람이 원하고 선택할 만한 것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고, 그렇게 하기도 한다. <리타 길들이기>에서 리타가 대학 학위를 따기로 선택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환경은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며, 무엇을 할지 선택하는 데 강한 영향을 끼친다. 개인은 그가 속한 사회의 산물이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장하준/김희정 옮김/2014/부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