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0일 토요일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부분

갑자기 나에게 너무나도 자명하게 나타나 보이는 것은 시간과 싸워야 한다는, 다시 말해서 시간을 포로처럼 사로잡아야 한다는 필요성이다. 내가 그날그날 목적 없이 살고 되는대로 내버려 두면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고 나는 나의 시간을 잃는다. 나 자신을 잃는다. 결국 이 섬 안에서의 모든 문제는 시간의 문제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맨 밑바닥부터 생각해 본다면 내가 이곳에서 마치 시간의 밖에서처럼 살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의 달력을 재정립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되찾은 것이다. 이제부터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이 처음 추수한 밀과 보리의 어느 한 알도 현재 속에 탕진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송두리째 마치 미래를 향한 용수철과 같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두 가지 몫으로 나누리라. 그 첫 번째 몫은 내일 당장 땅에 뿌려질 것이고 두 번째 몫은 안전을 위해 비축될 것이다. 왜냐하면 땅 속에 뿌린 씨앗의 약속이 허사가 되는 일에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 축재하라! 그런데 바로 여기서 다시금 나의 비참한 고독이 상기된다! 나에게 있어 씨를 뿌린다는 것은 좋은 일이며 추수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내가 곡식을 찧고 반죽을 익힐 때 괴로움은 시작된다. 왜냐하면 그때 나는 오직 나만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메리카의 식민은 끝까지 계획된 과정을 후회 없이 추진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빵을 팔 것이고 그가 금고 속에 쌓아두게 되는 돈은 축재한 시간이요, 노동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의 경우 나의 비참한 고독은 내게도 부족하지 않는 돈의 혜택을 박탈해간다! 나는 오늘날 돈이라고 하는 이 거룩한 제도를 비방하는 자들이 얼마나 미쳤으며 그 짓이 얼마나 못된 짓인지를 헤아릴 수 있다. 돈은 합리적인 -계량할 수 있으므로- 동시에 보편적인 -돈으로 치환된 부는 만인에게 접근 가능한 잠재력을 지니므로- 차원을 제공함으로써 그것이 접촉하는 모든 것을 정신적인 것으로 만든다. 매매 가능성은 근원적인 미덕이다.『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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